주례사 최영도  (Homepage) 2013-12-21(토) 17:45:58, 9140

주례를 부탁 받을 때마다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처럼 이렇게 많은 분들이 식장을 찾아주셨지만 주례사를 듣기 위해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아무도 안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주례를 또 서야 하는가? 정말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주례를 부탁하러 온 오늘의 이 신랑 신부에게 이번에는 제가 도리어 부탁을 했습니다. 주례사 대신 두 분이 사랑의 편지를 교환하라고, 주례사 대신 그 사랑과 그 감동을 서로 나눠가지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참 잘 한 것 같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사랑의 편지였습니다! 그러면 이 감동과 이 사랑을 어떻게 행복한 가정으로 꽃 피울 수 있을까? 저는 이 자리에 서있는 신부 전은소양의 옛 직장 동료였습니다. 2년 전에 교직을 그만두고 요즘은 전업주부의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을 꽃 피울 수 있는 그 답을 요즘 제 생활 속에서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어설픈 전업주부로서 제 김치 담는 일에서 그 답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터득한 맛있는 김치 담는 비결의 첫째는 기다림입디다. 퇴직하기 전에는 집에서 김치를 담아 보지 않았습니다. 떨리는 맘으로 첫 김치를 상에 올렸는데 애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참 미안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그냥 다시 사먹고 말아버릴까?` 갈등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아빠가 먹어봐도 정말 맛이 없네! 처음이라서 그래 미안해. 당분간 좀 기다려 줘! 요즘은 제가 김치를 담아 놓으면 가족들이 그런대로 맛있게 먹어줍니다. 얼마 전에는 김장도 끝냈습니다. 맛있는 김치 담그는 비결의 시작은 가족이 기다려 주는 것입디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신랑 신부는 사회적으로 완벽한 성인이지만 부부로서, 한 가족으로서는 완전초보에 불과합니다. 이제부터 같이 살아보면 서로의 눈에 상대의 미숙한 점이 많이 띄게 될 것입니다. 혹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서로 겸손하게 표현하면서 사랑으로 기다려 주셔야합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행복한 가정의 완숙한 부부, 훌륭한 인생의 동반자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맛있는 김치 담그는 두 번째 비결도 기다리는 것입니다. 김치를 담아놓으면 자극적인 양념 맛이 살아있는 생김치일 때는 좀 낫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김치가 익기 직전이 되면 배추 맛도, 양념 맛도, 김치 맛도 아닌 이상한 맛이 나는 그런 시기가 잠시 있습니다. 그렇지만 익을 날을 기다리면서 며칠을 더 보내고 나면, 배추 맛도 없어지고, 양념 맛도 사라지게 되지만 김치라는 새로운 맛으로 다시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가정생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디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 때는 상대의 단점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살아보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구속의 가정생활만이 도리어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날이 오더라도 돌아눕거나 포기하지 말고,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주면서 사랑으로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의 기다림 속에서 깨가 쏟아지던 신혼의 자극적인 맛보다 훨씬 깊고 짙은 가정이라는 새로운 맛으로 숙성되어 올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기다림 속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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