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밥상 최영도  (Homepage) 2014-10-06(월) 07:40:04, 8587

고등학교 2학년 어느 여름날 오후였다. “현석아, 종례 끝나고 교무실로 와라.” 교무실로 가자 담임 선생님은 상세히 그린 약도와 도시락 가방을 주며 말했다. “미안한데 이 도시락 가방 우리 집에 좀 갖다 놓아라” 순간 나는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왜 하필 매일 물로 배를 채우는 내게 이런 심부름을 시키는거야!’ 나는 씩씩거리며 십여 분을 걸어갔다. 약도에 표시된 곳으로 찾아가니 마당의 꽃밭이 아름다운 아담한 집 하나가 보였다. 대문의 나무 기둥에는 ‘김승헌’이라는 선생님의 성함이 새겨진 문패가 달려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다. “현석 학생이구나. 어서 와요.” ‘사모님이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나를 반기는 사모님을 보고 당황한 나머지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어서 들어와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사모님은 나를 안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마루에 잘 차려진 밥상이 있는 게 아닌가. 그것을 본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넋을 잃고 서있자 사모님이 내 팔을 잡아끌며 상 앞에 앉혔다. “얼른 앉아 편하게 먹고 가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쌀밥이었다. 첫술을 입에 넣는 순간 더는 숟가락을 뜨지 못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울었다. 나는 경남 창녕에서 상경해 누나의 신혼 단칸방에 얹혀 지내다 몇 달 만에 가출했다. 선생님은 일 년 전부터 학교 도서관과 친구 자취방을 전전하던 내 딱한 처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작정 집에 가서 밥을 먹으라고 하면 가지 않을 게 뻔하니 심부름을 보냈던 속 깊은 선생님. 나는 그 사랑의 힘으로 대안학교 교감이 되었다. 학업을 포기하기 직전의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생활 지도의 달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선생님을 떠올린다. 36년간의 교직 생활을 그 눈물 젖은 밥상의 힘으로 살았다. 오직 ‘아이들의 눈빛을 먹고 사는 선생’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교사의 길을 힘차게 달려올 수 있었다. * 출처 : 좋은생각(www.positive.co.kr/)서현석 님의 글<청소년 세움 ‘디딤돌’ 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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