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방송 최영도  (Homepage) 2013-12-06(금) 10:29:07, 9173

오늘은 12월 2일부터 기차가 다니지 않게 된 동해남부선 해운대역에서 송정역까지 해안선이 아름다운 기찻길을 걸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송정에서 서여고 제자들을 몇 분 만나 점심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기찻길을 걸으며 그 시절 서여고 교지에 실었던 기찻길과 관계되는 글이 생각나 이곳에 올려봅니다. ~~~~~~~~~~~~~~~~~~~~~~~~~~~~~~~~~~~~~~~~~~~~~~~~~~~~~~~~~~~~~~~ 안내방송 “산(山)토끼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라는 넌센스 퀴즈에 의하면 죽은 토끼가 정답 이라더군요. 산(山)! 산은 모든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신의 사랑의 입김을 간직하고 있나봅니다. 모든 것이 산 속에만 들어가면 살아 숨을 쉽니다. 산토끼, 산노루, 산울림...... 저도 삶의 호흡이 가빠질라치면 말없이 산을 찾아본답니다. 기차도 타고, 버스도 타고, 그러다 결국은 걸어서 산을 올라봅니다. 아마 졸업을 맞이하는 지금 여러분들의 모습은 “잠시 후 이 기차는 ○○역에 도착하겠습니다. 잊으신 물건은 없는지 다시 한번........”이라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출구로 나서고 있는 인생 여행자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라는 기차를 타고 너무나도 획일적인 교육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속에 그냥 실려왔습니다. 기차가 레일을 벗어나면 목적지까지 갈 수가 없기에 할 수 없이 획일적인 교육의 굴레를 벗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대학입시라는 현실 때문에 마음의 양식을 쌓아 가는 정의적인 교육보다는 컴퓨터에 각종 자료를 기억시켜두듯, 그냥 머리 속에 온갖 정보만을 잠시 입력시켜 두는데 그쳤고, 또한 각자의 개성이 무시된 순간도 대단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기차여행은 소극적인 여행이었기에 조금은 편안한 여행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여행은 직접 걸어야 하는 적극적인 여행입니다. 레일처럼 뚜렷한 길이 있는 것도 아니며, 친절한 안내방송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지만 무턱대고 그들을 따라 갈 수도 없는 너무나도 냉혹한 인생여로에 내동댕이 쳐졌습니다. 참으로 힘들고 조심스런 여행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걸음걸이를 멈출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앞에 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을 자리에 가만히 앉혀만 둔 채, 기차를 끌고 왔다가 이제는 기차 밖으로 밀쳐버리는 것만 같아 죄스런 맘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나의 일이 남았습니다. 기차는 레일 위를 계속 달려야하고 여러분이 앉았던 그 자리에 또 다른 여러분들을 앉혀야 합니다. “.......부디 흐뭇하고 유익한 여행이 되시길 빕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의 마지막 구절을 생각해 보며 나도 기차를 나서는 여러분들에게 마지막 안내방송을 들려 드리렵니다.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십시오. 기차 속에서는 앞으로, 뒤로, 또는 차창 밖으로, 아니 눈을 감아버려도 관계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눈을 들어 멀리 정상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그 길은 오솔길일 수도 있고, 아무도 지나지 않은 길이 아닌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 길에는 외로움의 독백과 두려움의 망설임과 고통의 땀이 있습니다. 그러나 삶다운 산의 소리도 있습니다.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무얼 그리 갈래갈래 깊은 산 속 헤매나...... ” 산모퉁이만 돌아서면 바로 그곳에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송학사(행복)가 있건만, 사람들이 이 길, 저 길 여러 갈래 길에 서서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바로 눈앞에 있는 여러 갈래 길을 보며 방황하지 말고, 눈을 들어 멀리 정상을 바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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